“현대미술은 브랜드의 가치를 어떻게 창출하느냐가 작가로서의 성공을 좌우합니다.” – 김문석 작가 (2024년 올아트페어)
김문석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이 주목한 작가이자, 벨기에 라인 아트페어와 스위스 아트 바젤 스코프 등 유럽 주요 아트페어를 무대로 활동하는 글로벌 아티스트다. 지금까지 350여 회의 초대전 및 단체전, 18회의 개인전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왔다.
가원미술관, 관훈갤러리, 가나아트 스페이스, 아리수갤러리 등에서 열린 개인전은 그의 예술적 궤적을 입증하는 주요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KIAF, 화랑미술제, 부산국제아트페어 등 국내외 주요 아트페어에도 꾸준히 참가해 왔다.
대표작 ‘문명 시리즈’를 통해 전통 프레스코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온 그는, 브랜드와 문명의 상징을 융합한 작업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독창적인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고려대학교 미술교육과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으로 미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현재는 교육자이자 작가로 활동 중이다.
김 작가는 “현대미술은 브랜드의 가치를 어떻게 창출하느냐가 작가로서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말하며, 작품성과 대중성 사이의 균형을 예술적 과제로 삼고 있다. 상업성과 자존심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한 그의 고민은 곧 작품 세계의 중심축이 되어 왔다.
“무명작가에 더 가깝다”고 자신을 표현하는 그이지만, 이미 그의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명 시리즈의 진화
초기 작품 세계(1990년대)
김문석 작가의 예술 여정은 의외의 지점에서 시작됐다. 대학 재학 중 운영하던 화실에서 거북이 다섯 마리를 키우며 작업을 이어가던 그는, 서울대 동양화과 이종상 교수로부터 “자기 주변에 있는 것을 가지고 작품을 해라”는 조언을 듣고, 화실에서 키우던 거북이를 모티프로 삼아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는 “거북이의 등껍질 무늬를 컴포지션으로 재해석하면서 작품 세계를 넓혀갔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기가 제 예술의 근간을 다진 시간이었죠”라고 회상했다.
중기 작품 세계(2000년대)
중기에 접어들면서 그의 작업은 보다 클래식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문명을 1차원적 관점에서 표현하던 이 시기에는 전통적인 기법과 재료를 탐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흙과 프레스코를 이용한 설치미술, 토템 작품 등을 통해 원시 신앙적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 했다”며, “약 15년에서 20년 정도를 이런 작업에 매진했죠”라고 밝혔다.
현재의 작품 세계(2010년대 이후)
2011년을 기점으로 김문석 작가의 작품 세계는 뚜렷한 전환점을 맞는다. 이 시기 탄생한 ‘융합 문명 시리즈’는 현대 문명의 상징들과 고대 벽화 이미지를 한 화면에 병치시키며 새로운 조형 언어를 시도했다. 코카콜라 로고, 삼성, 현대 등 익숙한 브랜드들이 고대적 형상과 결합되며 시간의 간극을 넘어서는 표현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문명의 혼합을 시도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인체비례도와 현대의 브랜드 로고가 한 화면에 공존하게 된 거죠.
특히 젊은 층이나 미래지향적 사고를 가진 분들이 이런 작품들을 선호하시더군요.”
현재 그의 작업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나는 아크릴을 활용한 대담하고 강한 인상의 ‘록(Rock) 스타일’ 작품이며, 다른 하나는 비교적 클래식한 정서를 유지한 방식의 작업이다.
“결국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가지들입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우리 문명의 모습을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죠.”
이러한 진화를 거치며 김문석 작가의 예술 세계는 보다 견고해졌다. 거북이의 등껍질 무늬에서 출발한 조형 탐구는, 이제 현대 문명에 대한 통찰과 비판을 담아내는 서사로 확장되고 있다.
프레스코 기법의 현대적 재해석
프레스코는 ‘신선하다’는 뜻의 ‘프레시(Fresh)’에서 유래한 용어다. 이 기법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을 만큼, 인류 문화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실제로 대부분의 프레스코 작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대부터 전해져 오는 독특한 회화 기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통 프레스코의 가장 큰 특징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 회화가 접착제를 통해 안료를 고정하는 것과 달리, 프레스코는 석회와 모래를 섞은 벽면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릴 때도 옆에서 조수들이 석회를 발랐죠. 하루에 그릴 수 있는 만큼만 발라놓으면, 그 위에 빠르게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마르기 전에 작업을 끝내야 하니까요.”
김문석 작가는 이러한 전통 프레스코 기법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포터블 프레스코’라는 새로운 형식을 도입했다. 이는 고정된 벽이 아닌, 가볍고 이동이 가능한 건축 자재 위에 프레스코 기법을 구현함으로써 현대 미술 시장의 유동성에 부응하는 방식이다.
“벽화는 말 그대로 벽에 그리는 그림입니다. 하지만 현대 미술 시장에서는 작품이 이동 가능해야 하죠. 그래서 가벼운 건축 자재로 작은 벽을 만들어 그 위에 프레스코 기법을 구현했습니다.”
또한 프레스코 특유의 자연스러운 균열은 작가에게 있어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하는 중요한 요소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자세히 보면 균열이 있습니다. 이는 결함이 아닌 프레스코만의 독특한 특징이에요. 석회와 모래가 마르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이러한 전통적 기법에 현대적 해석을 더한 김 작가는, 프레스코를 현대 문명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창작 도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레스코를 거의 시도하지 않았던 이유를 꼼꼼한 성격 탓으로 보며, 제한된 시간 안에 작업을 완성해야 하는 이 기법의 특성이 다빈치에게는 맞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반면 자신에게는 이 시간적 제약이 오히려 창작의 동력이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예술철학과 작품세계
“현대인은 브랜드를 소비하는 동물입니다.”
김문석 작가의 예술 철학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시대의 본질을 읽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데 집중해 왔다. 작가는 “누구나 예쁜 꽃, 아름다운 풍경을 그릴 수 있습니다. 대학 시절까지는 저도 그런 그림을 많이 그렸죠. 하지만 현대미술 작가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브랜드의 가치를 어떻게 창출하느냐가 관건입니다”라고 밝히며, 미술에서의 ‘가치’에 주목한다.
이 같은 철학은 ‘문명 시리즈’를 통해 구체화됐다. 코카콜라, 삼성, 현대 등 현대 문명의 상징들을 고대 벽화 이미지와 결합시키는 그의 작업은 단순한 조형적 실험을 넘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문명의 대화를 시도하는 동시에 인류 문화의 연속성을 시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아끼는 브랜드들도 언젠가는 화석이 될 수 있습니다.
소니가 삼성에 자리를 내어주었듯이, 삼성도 언젠가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되겠죠.
저는 그런 문명의 순환과 리사이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대중성과 작품성의 균형
김문석 작가는 작품성과 대중성의 균형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해 왔다. 아트페어와 같은 상업적 전시에서도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관객과의 소통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그의 창작 과정 전반에 걸쳐 중요한 과제로 작용하고 있다.
“너무 파는 것만 생각해서 자존심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존심만 세워서 개인적인 느낌만을 강요할 수도 없죠.
작품성과 대중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
그것이 제가 현대미술 작가로서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작품이 세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젊은 세대는 그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업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기성세대는 전통 기법에 기반한 표현에서 익숙함을 느낀다.
“예술은 결국 소통입니다.
시대와 소통하고, 관객과 소통하고, 나아가 과거, 현재, 미래와 소통하는 것이죠.
제 작품이 그런 소통의 매개체가 되길 바랍니다.”
그가 작가 김홍신과의 협업에서 남긴 문구, “지나간 시간은 흔적으로 남는다”는 말은 김문석 작가의 예술 철학을 잘 보여준다. 그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문명의 흔적을 포착하고 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평생 과제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다.
작업 방식과 예술관
김문석 작가의 작업 방식은 일반적인 작가들과는 차별화된다. 그는 하나의 작품에 몰입해 완성하는 방식이 아닌, 여러 작품을 동시에 병행하는 다작(多作) 체계를 택하고 있다.
“제 작업실은 마치 공장과 같습니다.
앤디 워홀이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Factory)’라고 부른 것처럼,
저의 작업실도 일종의 공장 시스템으로 운영됩니다.
프로 작가라면 작업량을 많이 가져가야 하거든요.”
김문석 작가는 작업 중 특정 작품에서 창작의 흐름이 막히는 순간이 오면, 그 작품에 계속 매달리기보다는 다른 작업으로 전환하며 흐름을 이어간다. 여러 작품을 동시에 병행함으로써 창작의 리듬이 끊기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그의 작업 방식의 핵심이다. 이러한 유연한 전환은 창작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프레스코 기법의 특성상 시간 효율과 재료 관리 역시 중요하다. 김 작가는 석회를 사용할 경우, 한 달 치를 미리 준비해 작업에 일관성을 유지하고 시간을 절약한다.
“석회를 반죽해야 할 때는 한 달치를 한꺼번에 준비합니다.
시간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죠.
이는 단순한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작업실 바닥에 여러 작품을 펼쳐놓고 동시다발적으로 작업하는 그의 모습은 잭슨 폴록의 드리핑 기법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작업은 즉흥성보다는 철저한 계획에 기반한다.
전시회를 앞두고 그는 크기, 가격, 대중성, 작품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작품을 선별한다. 특히 아트페어와 같은 상업적 전시에는 더욱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예술가로서의 감각과 작업 시스템의 조화 역시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그는 예술가에게 영감이 중요한 요소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작업 세계를 구축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창의성과 함께 체계적인 작업 시스템을 병행함으로써, 예술적 감각과 실천 가능성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에게 작업실은 단순한 제작 공간을 넘어 창조와 실험, 성찰의 공간이다.
“때로는 한 작품이 다른 작품에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창작의 순간들을 만나게 되죠.
그런 순간들이 제 예술의 동력이 됩니다.”
미래를 향한 도전
“아직 무명작가에 더 가깝다”
김문석 작가는 350회가 넘는 전시 경력과 국제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아직 무명작가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이 표현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더 넓은 가능성을 향한 자세를 반영한다. 그는 “너무 일찍 유명해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며, “그만큼 더 성장할 여지가 있고, 더 큰 도약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2025년 예정된 미국 전시는 그러한 도전 정신을 상징한다. 그는 해당 전시에서 백남준의 영향을 받은 비디오 작업이나 팝아트적 요소를 반영한 진보적인 작품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현재의 작품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특히 대표 연작인 ‘융합 문명’ 시리즈는 향후 더욱 확장될 예정이다. 김 작가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문명의 혼합,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싶다며, 40~50대 컬렉터들과의 공감을 유지하면서도 예술적 진보성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기법적 측면에서도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프레스코라는 전통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포터블 프레스코’의 가능성을 넓히고 있으며, 새로운 재료와의 결합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아울러 “예술가는 시대의 증인이자 기록자”라는 입장에서, 동시대의 문명적 흐름을 어떻게 예술로 의미 있게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어가고 있다.
그는 “작가는 늘 미완성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완성되었다고 여기는 순간, 더 이상의 발전은 없기 때문이다. 김문석 작가에게 예술은 계속되는 도전이며, 앞으로도 새로운 실험과 탐색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늘 미완성이어야 합니다.
완성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의 발전은 없으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겁니다.”
예술 교육자로서의 삶
“학생들에게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미술교육과 교육대학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김문석 작가는 기술적인 기법 전달을 넘어, 예술적 사고의 확장을 교육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그의 강의는 ‘왜 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가’, ‘왜 이 시대에 이런 예술이 필요한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학생들과 함께 예술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시도한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그의 예술 철학과도 맥을 같이한다. 그는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형식미가 아니라 브랜드의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이라고 보고 있으며, 학생들에게도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프레스코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온 그의 작업 경험은 교육 현장에서도 유의미한 사례가 된다. 그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시대적 감각을 반영한 표현 방식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전하며, 학생들이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시각을 갖도록 이끈다.
아울러 그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등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예술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비대면 사회, 기술 중심의 흐름 속에서도 인간 고유의 감성과 창의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예술 교육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있다.
교육자로서의 활동은 그의 창작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는 학생들과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고, 그로부터 작업에 필요한 자극과 영감을 받아 예술 세계를 더욱 확장해나간다.
김문석 작가에게 예술 교육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명이다.
“예술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합니다.
후학들이 저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제가 교육자로서 꿈꾸는 목표입니다.”
김문석 작가는 오늘도 작가이자 교육자로서의 두 역할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그의 작업실과 강의실은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넓히고, 미래의 예술가들을 길러내는 실험실이자 양성소로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