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엄재홍_The coffee _ 65-80cm_한지 위에 수묵채색_2024

작가 엄재홍_동상이몽(同床異夢) _ 38 x 78cm_한지 위에 유성매직_2024

[아트타임즈엠]
캔버스 위에 빼곡히 쌓인 문자와 기호, 색의 파편들을 통해 내면의 풍경을 구축해 온 엄재홍 작가의 개인전이 오는 12월 31일까지 엠아트센터 8G–H 전시관에서 개최된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관람료는 무료다.

엄재홍의 작품은 언뜻 문자처럼 보이지만 명확히 읽히지 않는 기호들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반복되는 검은 붓질과 리드미컬한 획, 그리고 빨강·노랑·파랑의 강렬한 색채는 무의식 속에서 떠오른 이미지의 잔상을 시각적으로 기록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 기호들은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느껴지는 언어’로 작동하며, 질서와 혼돈의 경계에서 화면 전체에 긴장과 밀도를 형성한다. 반복되는 형상 속에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색의 변주와 상징적 이미지들은 기억의 왜곡과 전이, 그리고 무의식의 작동 방식을 연상시킨다.

이번 전시는 라캉이 시도한 프로이트의 재해석, 즉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의미가 고정되지 않은 기표들을 화면 위에 축적해 나가며, 문자와 기호를 기억의 잔재이자 망상과 상상이 교차하며 순간적으로 생성된 흔적으로 제시한다. 작품은 하나의 해답이나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고, 관람자가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투사하며 스스로의 무의식과 조우하도록 열린 구조를 지닌다. 개별 작품들은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사고의 흐름처럼 채운다.

작가 엄재홍_Life performance man _ 35.5 x 58.5cm_한지 위에 수묵채색_2023

작가 엄재홍_유랑(流浪) _ 45.5 x 53cm_한지 위에 수묵채색_2024년

전시에는〈The coffee〉,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삶과 익숙함의 사이〉, 〈내가 가야 할 길〉, 〈인생은 나에게〉, 〈동상이몽〉, 〈Life performance man〉, 유랑(流浪),〈기억은 가물가물〉, 〈어디로 가야할까요〉등 한지 위에 수묵과 채색으로 완성된 주요 작품들이 소개된다.

엄재홍 작가의 작업은 ‘이해하려는 순간’보다 ‘느끼는 순간’에 더 가까이 다가온다. 읽히지 않는 언어와 해석되지 않는 기호들 속에서 관람자는 오히려 자신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무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감각에 집중하며, 의식의 바깥에서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언어를 마주하는 시간을 제안한다.

한편, 엄재홍(Eum, Jae Hong)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9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18회의 개인전을 개최하며 꾸준한 작업 세계를 구축해 왔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2024년 18회 개인전 〈관계의 흐름/부산경찰청〉, 2023년 〈꽃을 든 초상/갤러리 지팩, 부산〉, 〈내 안의 블랙박스/갤러리 공간35, 서울〉, 2022년 〈검(玄)은 충동/자명갤러리, 부산〉, 2019년〈기억의 흔적/인사아트센터, 서울〉등이 있다. 초기 연작인 〈물상과의 사유〉시리즈는 2009년부터 서울·경주·부산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발표되며 그의 작업 세계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또한 그는 국내외 주요 단체전과 국제 교류전에 활발히 참여해 왔다. 한국–루마니아 국제현대미술교류전, 서울아트페어, 강남초대작가전, 호연지기 한국화대작전(예술의전당), 노마드(NOMAD)전, KOREA, RE-FOUND(체코)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하며 동시대 한국화의 확장 가능성을 국제 무대에서도 선보이고 있다. 전통적 한국화 재료인 한지와 수묵을 기반으로 하되, 현대적 사유와 심리적 탐구를 결합해 온 그의 작업은 동시대 수묵 회화가 지닐 수 있는 사유의 깊이와 표현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읽히지 않기에 더 깊이 다가오는 언어, 해석되지 않기에 더 오래 머무는 감각.
엄재홍 개인전은 무의식의 표면을 따라 흐르는 기호와 색의 흔적 속에서, 관람자 각자가 자신의 내면과 조용히 마주하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